제 마음 속에 영원한 스승이신 은사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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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울 너머로 저만치 내다보이는 문화근린공원의 중턱에 새하얀 목련과 연보라 빛 꽃망울을 함빡 터뜨려 화사한 벚꽃들의 향연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와 조화를 이루어, 천사처럼 마음이 환히 밝아지는 이곳 문우동산의 무릉도원에서 지천에 널려 있는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과 함께 하면서 때로는 이렇게 어린 아이들처럼 설레일 수 있으며, 저에게 주어진 소중한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행복감과 함께 건강한 모습과 뜨거운 가슴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에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을 느껴보면서, 제 인생과 교직생활의 멘토이시자 영원한 스승이신 은사님의 은덕을 기리며 오랜만에 문안 인사드려 봅니다.


그러니까 은사님과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1967년 전남 장흥군 용산면 계산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으셔서

6학년이었던 저희들을 맡으시면서 부터였습니다.

그 때 당시는 중학교 입시가 치열했던 때라서 어린 저희들도 새벽부터 학교에 나와 소위 0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면 동생들이 등교하면서

도시락 두 개에다 시래기 국이 든 냄비까지 얹혀서 질질 끌다시피 낑낑대며 들고 오는데, 어린 동생이 들고 오기에는 너무 무거워 국이 절반 정도는 엎질러지고 김칫국물도 흘러내려 보자기가 다 젖고 범벅이 되었지만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촐촐한 시장기를 달래고, 남은 또 한 개의 도시락은 그냥 책상 속에 두면 밥이 차가워진다고 수십 개의 도시락을 선생님께서 기거하신 사택의 아랫목의 이불 밑에 넣어두었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하나씩 꺼내 주셨던 선생님과 사모님의 온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덕분에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맛있게 까먹고 나서 오후 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하다가,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땅거미가 밀려올 때쯤이면 운동장으로 나와 체력장 연습을 한답시고 100m 달리기, 턱걸이 연습, 멀리 던지기, 오래달리기 등을 하면서 한바탕 요란을 피우고 나서는 땀방울이 채 마르기도 전에 숨을 헐떡거리면서 책보자기를 싸매들고, 이번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를 계이름으로 외어 목청껏 부르며 신작로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이 매일 반복되는 상당히 힘든 중노동(?)이었을 법도 한데, 그 땐 별로 힘든 줄도 모르고 그저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오직 한 가지의 목표만을 향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도 한 명이라도 더 중학교에 넣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저희들을 가르치시느라 코피를 흘리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면서도 저희들에게 생활 속에서 늘 정직과 성실을 강조하시며, 예절 지도에서부터 나눔과 배려, 소통과 사랑 등 인성교육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지도를 해주셨으며 그 때 은사님의 큰 가르침에 감동과 영향을 받은 저도 은사님의 뒤를 이어 교단에 서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 때 선생님의 존재와 가르침이 저에겐 절대적인 숭앙과 선망의 표상이었으니까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당시의 상황이 통신 시설도 미비하였을 뿐더러 지금처럼 ‘스승 찾기’ 같은 프로그램도 없던 시절이라서 은사님의 소식을 접할 수가 없어 늘 안타까웠었는데,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1990년 은사님께서 교감으로 승진하시면서 그 동안 근무해 오셨던 학교를 순회하시던 차에 맨 먼저 첫 부임지인 저희 모교를 찾으니 학교는 폐교되었고, 전에 기거하셨던 사택도 다 허물어져 먼지만 뒤집어쓴 채 댕그라니 남아 있었다며 안타까워 하셨지요.


저희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23년이 지난 뒤라서 시골에 친구들이 남아 있을 리 없었을 테고, 우연히 읍내에서 금은방을 하고 있었던 영훈이에게 제가 광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시고 나서 몇 일간에 걸쳐 광주에 소재한 국·공립학교부터 사립학교까지 찾으시다가 광주송원초등학교라는 사립학교에 제가 재직 중인 것을 발견하셨다지요.


저는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첫 발령을 받아 10년째 근무하고 있던 중 우연한 기회에 사립학교였지만 그 학교에서 저를 불러주셔서 운 좋게도 광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땐 이미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이 된 후여서 광주로의 입성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저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고 그 바람에 저는 농어촌, 도서벽지, 대도시는 물론 국공사립 학교를 두루 걸치는 보기 드문 기록까지 갖게 되었지요.


교육대학에 입학하면서 저는 이미 은사님의 과업을 물려받아 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었기에, 교단에 들어서면서부터 스스로 정립한 교육철학에 따라 묵묵히 실천했던 것들이 조그마한 결실로 나타나 거의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광주로의 입성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광주로의 진입은 목마른 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되었습니다.

보다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약속의 땅이었고, 특히 그렇게 더 하고 싶었던 학업에도 매진하여 석·박사 학위까지 덤으로 취득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학교로 걸려온 뜻밖의 전화 통화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그토록 찾고 싶었고 오매불망 그리던 은사님임이 확인되는 순간, 너무나 반가움과 감격스러움에 찡하는 전율과 함께 목이 메여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었지요. 제자가 스승님을 찾는 게 마땅한 도리이거늘 적반하장 격으로 스승님께서 먼저 제자를, 그것도 갖은 우여곡절을 거쳐 찾게 만든 무례함을 저질렀다는 죄송함과 자괴감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어쨌든 은사님과의 재회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던 친구들과 동창회를 재조직하여 27년째 이끌어 오면서 우정을 나누고 있다는 것은 은사님께서도 익히 알고 계신 바와 같습니다. 지금은 모두 이순이 지난 중년들이 됐지만 참으로 다정하고 포근한 깨복쟁이 친구들이지요.


1997년으로 기억합니다만 은사님께서 교장으로 승진하시던 해 스승의 날 무렵에 저희 친구들 20 여명이 은사님을 찾아뵙고 축하연을 해드리던 날, 정읍에서 군산·장항의 모임장소로 이동할 때 저에게 은사님의 차 운전을 맡기시고 제 옆에 앉으셔서, 제자들이 이렇게 찾아와 축하해주니 너무 행복하다시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시며 고마워하시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2008년 은사님의 정년퇴임식을 겸하여 집필하신 교단수상록 ‘학교종은 땡땡땡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의 발간 기념식 때, 제자로서 같은 교직의 길을 걷고 있는 제가 수백 명의 하객들 앞에서 40 여성상 동안 은사님께서 걸어오셨던 숭고한 교단의 길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또한 발행인 자격으로 책 소개까지 할 수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크나 큰 영광이었고, 은사님 또한 정읍 지역사회에서는 유사 이래 전무후무한, 참으로 의미 있고 멋진 퇴임식이라고 회자되고 있다면서 덩달아 당신께서 그 주인공으로서 유명인사가 되셨노라고 자랑스러워하시고 기뻐하셔서 저희들 또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특히 제가 은사님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은사님께서 현직에 계시는 동안 제가 학교를 옮길 때마다 격려차 사모님과 함께 광주로 내려오셔서 제가 모시고 있던 교장·교감선생님께 제자를 잘 부탁드린다며 식사 대접을 하시고, 가을에는 또 그 분들을 정읍으로까지 초대하셔서 특별음식으로 접대하시는 등 저에 대하여 각별한 사랑과 하해와 같은 은덕을 베풀어 주셨지요.


그 외에도 은사님께서는 종종 저에게 스승이시기 이전에 교직 선배로서, 당신께서 먼저 걸어오셨던 교단에서 튼실히 쌓아 올리신 경험담과 노하우를 하나하나 전수해 주시며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특히 정읍동초 교장으로 봉직하신 5년 동안 월요일 애국훈화를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다는 것과, 5년을 하루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문에서 교통지도를 하시면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으며 그들의 표정을 살펴 그들이 안고 있는 어려운 점을 해결해 주시고, 출근하시는 선생님들의 애로 사항까지 곁들여 해결해 주신 점 등은 요즘 시대의 학교장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상함과 따스함의 결정체인 감성적 리더십의 표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한 은사님께서는 불꽃같은 정열과 햇살같은 교육애로 오로지 어린이를 위해 헌신해 오셨으며,

‘교육은 어린이를 위해 있고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학교가 필요한 것이므로 학교의 모든 활동은 어린이에게 즐거움과 행복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시며 어린이들에겐 질책보다는 칭찬을 처벌보다는 사랑과 격려를 해주고, 어린이들이 걱정과 고통이 없도록 적극적인 배려와 진솔한 사랑이 우선되는 교육에 힘씀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그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신 진정한 휴머니스트요, 교육 사랑의 실천가이시며, 현존하는 페스탈로찌이셨습니다.


공중목욕탕에 가셔도 표백제 사용을 줄이기 위하여 타월을 절대로 한 장 이외는 더 안 쓰신다는 환경실천가로서의 은사님께서는 그 동안 몇 차례의 교육행정가에로의 전직 권유도 있었다지만 이를 단호히 뿌리치시고, 오직 교육현장에서 겉으로 드러나거나 결코 화려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시며 확고한 철학을 갖고 인간 중심의 학교 경영과 ‘맞춤 교육’을 실천하심으로써 교육자라면 누구나 지향해야 할 진정한 스승 상을 정립하신 참스승이셨습니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저에게 말씀해 주셨고 정년퇴임 기념 교단 수상록에서도 밝히셨듯이, 바람직한 교직자의 자세로서 교사의 ‘실천 덕목’과 교감의 ‘뿌리론’ 그리고 교장의 ‘자질론’을 열거하셨는데, ‘뿌리론’에서 주창하신대로 당신께서 교감 시절엔 당신께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실천하면서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자세로 학교 조직의 중심이 되어 흔들림 없이 지탱하면서 교직원, 학생,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셨고, 학교의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생성되는 정보와 자료를 정비하셨으며, 교장 시절에는 ‘아름다운 향기로 기쁨을 주고 사랑을 받는 꽃이 되고 싶다.’는 신념으로 ‘지·덕·용’을 고루 갖춘 학교 경영자로서 아이들로부터는 사랑을, 교직원들로부터는 존경을, 학부모와 지역사회로부터는 신뢰를 받는 학교장 상을 정립하셨는가 하면, 인간 중심 교육과 민주적인 학교 경영, 이른바 ‘맞춤식 학교 경영’으로 어린이가 행복한 학교, 교직원이 신명나는 학교, 학부모가 만족하는 학교를 구현하셨습니다.


제자이자 새파란 교직 후배인 제가 38년이라는 교직생활을 해 오는 동안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고 교장이 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소신을 가지고 학교를 경영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동안 은사님께서 교육현장에서 실천해 오신 지대한 족적들이 저에겐 정통한 교육 지침서였고 완벽한 교육 실천 필독서의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참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은사님께서 당신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의 전 과목 교과서 및 학습장, 생활통지표, 필기도구, 책·걸상, 난로 위에 올려진 도시락 등 당시의 초등학교 교실 풍경의 연출과 함께 은사님께서 교단에 들어서시면서 부터 사용하신 학급경영부, 학습지도안철 등 주변에서 구하기 어렵고 보기 힘든 귀중한 교육 자료를 총망라해서 자라나는 후배들이 두고두고 참고할 수 있도록 사재를 털어 정읍동초등학교에 역사박물관을 설치해놓으셨는데, 해가 갈수록 후배 교장선생님들의 역사박물관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고 관리를 소홀히 한 것 같아 늘 안타까워 하셨는데, 차후로라도 후임 교장선생님들이 지역사회의 교육을 이끌어 오신 대 선배님의 숭고한 얼이 담기고 교육적으로 보존 가치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되는 사료의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칠순을 훌쩍 넘기신 지금도 40 여년간 외로운 스승의 길을 걸어오시면서 교육자가 된 것에 대하여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고, 그 시절이 오히려 자랑스럽고 행복하셨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면서, 지금은 비록 교육현장을 떠나 계시지만 아직도 매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정읍시 퇴직 교직원들과 함께 하는 역사 문화 기행에서 해설을 맡아 하시고, 수필가로도 데뷔하셔서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고 계시는 우리 은사님, 당신은 정녕 이 나라 교육 발전에 지대한 족적을 남기신 등불이요 산 증인이셨으며, 당신께서 이 땅에 뿌리신 꽃향기는 한 줄기 샘물이 되어 우리들의 가슴 속을 길이길이 적셔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은사님, 몇 년 전 은사님 내외분과 저희 부부가 은사님의 해박한 역사·지리 해설을 들으며 1박 2일로 문경세재와 안동 마을을 다녀오고 신안 증도와 목포 일원 등을 돌아봤을 때, 저녁에 한 방에 둘러 앉아 음식 솜씨가 좋으신 사모님께서 조리해 오신 족발메뉴에다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나누어 마셨던 소주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일전에 식사 자리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제 날씨도 화창해졌으니 두 부부가 문화 답사도 다시 시작해 보고, 기회가 되면 해외에도 한 번 나갔다 오셔야지요?

그런데 몇 일전 통화에서 이제 연세가 들어가시니 역류성 후두염 때문에 쉰 소리와 함께 자꾸 목이 잠기시고, 척추관협찹증으로 허리 통증과 함께 보행하시는데 좀 불편을 느끼신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신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이제 교직생활이 2년 여 밖에 남지 않은 저로서는 퇴임 전에 은사님께 해드릴 수 있는 뭔가 뜻깊은 이벤트가 없을까 하고 고심하고 있던 터였는데, 마침 이번에 한국교직원공제회에서 스승의 날 기념으로 공모한 ‘사제지간, 그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행사에 응모한 결과 제 사연이 당첨되어 5월 11일에 서울 The-K호텔에서 스승님께 카네이션 전달, 고급 와인과 중식 제공, 음악과 함께하는 토크콘서트, 전문 사진작가 기념촬영 이벤트 및 앨범제작 등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은사님 내외분과 저희 부부 등 4명을 초대해 준 한국교직원공제회 측에 감사드리며, 흐뭇하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 같아 지금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그 날 모처럼만에 좋은 자리에서 밝은 모습으로 즐거운 시간 보내보시게요. 그리고 앞으로 운동도 더 열심히 하시고 체력 관리에도 더욱 신경을 쓰시는 등 지금처럼 두 분 늘 건강하신 모습으로 저희들 곁에 오래오래 계셔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행복한 저녁 시간 되십시오.


2017년 4월 5일

언제까지나 은사님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제자 미환 삼가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