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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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선생님도 있고 간호사선생님도 계시지요. 그리고 병원을 운영하시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선생님도 계시다는걸 아시나요?


2016년 2월 29일 11살 둘째딸은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에서 급성림프모구백혈병진단을 받았습니다. 내가 엄마니까 정신을 차려야했지만 귀에는 사이렌소리가 울리고 머릿속은 돌덩어리가 된 듯 무거웠습니다. 의사선생님께 병과 치료에 관해 들었고 간호사선생님이 항암에 관한 수칙을 설명하고 영양사선생님이 항암식단에 대해 알려주시고 사회복지사선생님과 상담을 했었지만 아이의 미래는 누구도 장담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살린다는 희망과 아이의 미래에 대한 믿음은 오로지 내 몫이었고 외롭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쩌다 절망에 사로잡힐 때면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릴 만큼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딸아이도 처음에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듯 말을 잃었습니다. 항암과 구토가 시작되고 가슴에 항암 줄을 달고 나서 아이는 엉엉 울었습니다. 내가 왜 아프냐고 집에 가자고 말이지요. 아이를 다독였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나조차 절망적인 이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었고 원망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때 병원학교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입원하고 2주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달리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웃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고 저 또한 웃는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여기 병원학교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머니 여기 신청서 써 주시구요. 제가 서정이 학교에 연락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할게요.”

선생님은 병원학교에 관해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병원학교는 딸아이처럼 장기간 치료를 해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설립된 학교였습니다. 병원학교는 원적학교에서 건강장애 학생등록을 교육청에 하고 승인이 떨어져야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전 단순한 행정절차 인줄 알았지만 나중에 안 사실은 정신없던 나를 대신해 병원학교 선생님은 원적학교에 전화를 하고 건강장애학생이 처음이었던 학교에서 우왕좌왕 행정처리가 늦어졌지만 병원학교선생님의 조치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딸아이에게 병원학교 얘기를 꺼냈습니다.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항암으로 쇠약해져 극도로 예민해진 딸아이가 처음 학교란 말에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병원학교를 처음 가던 날 선생님은 서정이를 환자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서정아 반가워 안녕!”

쑥스러워 하는 딸아이에게 선생님은 밝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보는 사람은 안타깝고 슬픈 표정이었지만 선생님은 아주 밝고 명랑하게 딸아이를 대했습니다. 그렇게 오전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는 병원 와 처음으로 웃었습니다.

엄마 여기 선생님은 달라. 너무 좋아. 그리고 여기는 학교지만 요리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원예도 하고 금요일엔 영화도 본대 재밌는 것만 한다 정말 좋아. 나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매일 갈 거야.”

딸아이가 웃으니 그 동안 숨이 막힐 것 같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그래 이겨내자 할 수 있다. 이 시련이 나중에 아주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줄 거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딸아이 머리를 모두 밀던 날 저는 가슴이 찢어질 듯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금방 다시 자랄 거야.”

“괜찮아 시원하고 머리 안 감아서 좋아 병원학교 선생님이 그랬거든.”

“그렇기는 하네.”

“선생님이 언니 오빠들 다 봤는데 퇴원하면 금방 자란다고 그랬어. 지금은 그냥 머리 안 감아서 좋다고 생각하래 근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머리는 어차피 다시 자라니까. 그리고 병원학교에 다 머리가 없는 애들인데 나만 있어서 이상했어. 하하 엄마도 울지 말고”

“그래”


딸아이가 오히려 저를 위로했습니다. 힘든 일을 겪고 노심초사 걱정이었던 딸아이가 다시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에 병원학교와 선생님에게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병원학교 선생님은 언제나 긍정적이었고 웃으셨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친절하지만 환자가 아닌 제자로서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대해주셨답니다.

“얘들아 뭐 갖고 싶나? 이따 어린이날 선물 사러 갈 텐데 지금 말 안하면 내 마음대로 산데이.”

“저는 우정팔찌요?”

“너는 누구랑 우정을 나눌 낀데? 오~ 선생님하고?”




언제나 명랑하고 밝고 아이들과 농담을 하는 선생님이 전 항상 즐거운 줄 알았습니다.

병원생활이 길어지면서 안타까운 사연들도 생겼습니다. 유아 때부터 아팠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지만 끝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일도 있었고 같은 병실에서 일 년 동안 병원을 떠나지 못하고 투병했지만 항암불응으로 하늘로 보내야했던 나는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몇 날 며칠 마음이 아파 너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병원학교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함께한 시간만큼 이별의 아픔이 더 컸을 선생님이지만 그 이별의 상처를 안고 다른 아이들을 위해 웃어 보이기란 참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픈 아이들과 그 엄마들 그리고 특수한 환경 일반학교였다면 겪을 수 없었던 일들을 겪으면서 병원학교를 선택한 선생님이 정말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딸아이는 1년5개월이 지난 지금 퇴원해 집에서 유지치료 받고 있습니다. 사이버학교에 화상으로 수업을 하지만 그보다 병원 학교 가는 날을 기다립니다. 항암이 기다리는 병원인데도 병원 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을 보면 그만큼 병원학교가 좋은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자주 문자를 보냅니다. 그 미소가 보일 듯 말입니다.

(저는 개업을 앞둔 사장님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