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을 쌓듯 인생을 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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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자 비가 추적추적 내리 시작했다. 오후 내내 지짐거리던 빗줄기가 해거름 녘에 들어서면서 다소 굵어지기 시작했다. 한 동안 비 내리는 바깥 풍경에 심취해 있을 때에 큰 아이가 다가와 나를 붙잡아 흔들었다.

“엄마, 엄마! 있잖아. 우리 선생님 정말 좋은 분 같아. 다른 반 친구들은 담임선생님 맘에 안 든다고 투정부리지만, 난 우리 선생님 정말 좋아. 우리 선생님 정말 착한 것 같아!”

큰 아이의 말에 난 피식 웃고 만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는 담임선생님 좋다고 팔팔해 댄다. 엄마인 내가 보아도 큰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좋은 분 같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아이들을 잘 이끌고 따뜻하게 품어줄 것만 같다.

아이에게 책을 읽게 한 후 저녁 준비를 시작한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근 한 시간가량 남아 있다.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저녁 준비하다보니 내 생각은 점점 30여 년 전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나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그분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바로 ‘벽돌을 쌓듯 인생을 쌓아라.’ 란 말이다. 선생님을 뵌 지 5년의 세월이 흐른 듯하다. 간간히 타인을 통해 소식은 전해 듣곤 했다. 재작년인가 교장선생님으로 은퇴를 하시고 어느 시골 마을에서 노후를 보내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함 찾아뵙고 싶지만, 먹고 사는 일이 바쁘고 힘들다보니 찾아뵙질 못했다. 비록 찾아뵙진 못하지만, 선생님을 향한 고마움은 여전히 내 가슴 속 한 자리를 자라잡고 있다.

소싯적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었던 아버지로선 막노동 현장을 전전긍긍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워낙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진 막노동 현장을 돌며 기술을 배워 형틀 목수가 되었다. 목수로서의 삶을 시작한 아버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근면성실함으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 결과 지독스런 가난에서 벗어났고, 역시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었던 엄마를 만나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고아나 진배없었던 아버지를 의지했고, 엄마 역시 아버지를 의지했다.

아들과 딸을 낳고 여느 가정 못지않게 행복한 가정을 꾸렸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라도 되는 냥, 어려움이 닥쳐오게 되었다. 아버지가 건축자재 사기 사건에 연루가 되어 교도소에 수감 되게 된 것이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을 듣던 아버지가 사기 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수감이 되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마저 와병으로 몸져 눕게 되어 버렸다. 어머닌 도저히 두 남매를 보살필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변변찮은 살림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어머니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었다. 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엄마와 남동생을 돌볼 수밖에 없었다.

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정말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자 난 처음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했다.

근 한 달을 학교에 나가지 못하자 담임선생님이 직접 집에 찾아오셨다. 찾아오신 담임선생님은 와병으로 몸져 누운 어머니의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제대로 된 요양을 받지 않으면 어머니의 병세는 위중해져 목숨이 위태 놓을 수도 있다는 얘기에 선생님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와 남동생을 갈마보았다.

“저, 어머니! 아무래도 어머닌 서둘러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으시든, 요양을 하시든 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이들 때문에…….”

“외람되지만 어머니 건강 회복하실 때까지 제가 돌봐주겠습니다.”

“네, 선생님이요?”

어머닌 휘둥그레진 눈초리로 선생님과 날 갈마보았다. 나 역시 놀란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아이들 걱정하지 마시고, 요양 다녀오세요. 제가 정성껏 아이들 돌보고 있겠습니다.”

한동안 말없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어머니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닌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고마움을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엄마가 요양을 위해 시골로 떠난 후, 나와 남동생은 짐을 챙겨 선생님 집으로 들어갔다. 낯선 선생님 집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친 아이들과 그 어떤 차별도 없이 우리 남매를 돌봐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난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정숙하게 생활했고, 사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안일도 열심히 도왔다.

선생님 못지않게 사모님의 성품 또한 너무도 인자해 우리 남매에게 말 한마디도 섭섭하지 하지 않으셨고, 비록 새 옷은 아니었지만 옷 입는 것에도 꽤나 신경 써 주시곤 했다. 뿐만 아니라 남동생이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하면 함께 교도소에 동행하여 주시기도 했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어머니를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시기도 했다.


시간이 유유히 흘러 선생님 댁에서 지낸 지 일 년 정도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요양을 떠났던 엄마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돌아오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또한 곧 출소를 앞두고 있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정든 선생님과 사모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에 오랫동안 마음속에 허전하고 쓰라렸다.

“경화야! 그동안 선생님 집에서 지내는 거 불편하지 않았니?”

선생님의 물음에 난 절대로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모습에 선생님이 피식 웃으셨다.

“저,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

“궁금한 거? 뭔 데?”

난 마른 침을 꼴깍 삼킨 후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왜, 우리 남매를 데려다 돌봐 주신 거예요? 그것도 공짜로?”

“그게 그리 궁금하니?”

“……?”

“사실 선생님은 소싯적에 고아원에서 자랐었어. 어린 시절을 고아원에서 지내면서 고생 많이 했었지. 하지만 고아원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선생님은 없을 거야. 지금도 가끔 고아원을 찾아 엄마아빠를 없는 아이들을 위해 일일 아빠가 되어주곤 하지. 어쩜 고아로 자란 선생님이 죽을 때까지 해야 될 일인 지도 모르겠구나.”

난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그토록 남다른 이타심으로 우리 남매를 돌봐주셨는지를…….

“곧 있으면 아버지 출소하시겠구나! 아버지가 목수시라고 했지?”

“네?”

“그래, 경화네 아버진 참 훌륭한 목수이실 거야. 목수이신 경화네 아버지를 생각하니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구나.”

난 선생님의 말에 더욱 귀 기울였다.

벽돌을 쌓듯 인생을 쌓으라는 말이 있단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다면 언젠간 멋진 집이 완성이 되듯, 인생 역시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다 보면 언젠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인생을 살아가게 될 거야. 그러니 경화도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인생의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도록 해라. 선생님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선생님의 말에 난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석별의 정을 아쉬워했다. 며칠 후, 난 정든 선생님 댁을 떠나 근 일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저녁 준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남편이 퇴근해 돌아왔다. 남편은 배고프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온 식구가 한 상에 앉아 저녁식사를 시작하자 30여 년 전 선생님 댁에서 먹었던 저녁식사 풍경이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올핸, 정 선생님을 꼭 찾아뵙고 싶네요.”

“정 선생님! 아, 당신 어렸을 때 돌봐주셨다는 그 선생님?”

“당신도 함께 가 줄 거죠?”

“물론 바늘 가는데 실이 따라가지 않아서야 되겠나! 하하하.”

남편의 나 역시 배시시 웃고 만다. 정말이지 올핸 꼭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다. 그리고 꼭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